Monday, October 28, 2019

Hallelujah by Leonard Cohen

할렐루야는 캐나다출신 가수 레너드 코헨이 1984년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나중에 제프 버클리라는 가수가 리메이크한 후에 크게 히트를 치게되었는데 2001년 슈렉에 수록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곡을 처음 들은것은 1996년 여름이었다. 남편이 미국에 단기교육으로 가게되었을때 따라갔는데 교육을 받으면서도 출장및 학회등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는 해야했다. 당시 학회를 연 장소는 플로리다의 힐튼빌리지였는데 워낙 비싼 곳이라 머물지는 못했고 저녁초대만 받아 참석을 할수 있었다. 미국의 학회는 한국과 달리 학회 참석자가 동반자를 데리고 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족들을 많이 데리고 오기 때문에 주최측에서는 학회일정외에 동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거나 학회기간 중 한번은 참석자 및 가족을 동반한 저녁만찬을 한다. 내가 참석을 한 것은 호텔에서 주최한 저녁만찬이었다. 참석을 하긴 했으나 아는 사람도 없고 사교성도 없어 나혼자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수 없었던 것은 호텔의 규모와 분위기였다. 플로리다 남부해안에 말 그대로 빌리지를 만들듯이 호텔과 리조트를 구성해 놓았는데 아마도 요즘 말하는 프라이빗 풀빌라 개념이 아닐 듯 싶었다. 그 넓은 곳에 조용하면서도 아늑하게 비치앞에 마련해 놓은 장소는 해가 질때의 아련한 분위기와 굉장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분주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여유있는 남국의 정서를 즐길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동시에 왜 동남아의 그 많은 아름다운 해변에 미국인들은 없고 유럽인들만 있을까 하는 평소의 궁금증이 풀렸다. 미국안에서 동남아를 느낄수 있는 곳이 있는데 굳이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갈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온 청교도에게 터전을 빼앗긴 인디언들이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묘했다. 이 때 나온 음악이 바로 이 할렐루야였다. 처음 들은 것이기에 제목도 몰랐고 누가 불렀는지도 모르지만 음률만은 당시 내가 느꼈던 복잡한 기분과 묘하게 어우러져서 내 머리속에 깊히 새겨지게 되었다. 단지 가사에 할렐루야가 들어가니 종교음악인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후 슈렉에서 두번째로 듣게 되었을때는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야 이 곡이 많은 가수들에 의해 편곡되어지고 다양한 버전이 있으며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캐롤처럼 불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 곡을 들을때면 언제나 처음 들었던 곳의 해변과 노을과 거기서 느꼈던 조용하면서 적적하고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차단이 되면서 여유가 있지만 웬지 슬픈 느낌이 들었던 그 기분이 생각이 난다.   

Tuesday, October 22, 2019

캐리비안의 해적 OST

개인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영화자체가 아니라 내 영어실력 때문이었다. 첫번째 영화인 플랙펄의 저주가 나온것이 2003년이었는데 당시는 그 영화에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고 2005년 미국으로 가면서 두번째 영화인 망자의 함을 현지에서 본 것이다. 현대영어가 아닌것도 어려웠는데 배우들의 발음도 알아듣기 어려웠는데다가 자막도 없으니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알았지만 대사가 주는 깨알같은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다. 한마디로 영어실력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OST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아이들 학교 오케스트라가 이영화의 주제가를 연주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연주를 한 것이다. 인기가 많았던 영화이니 연주를 하는 학생들이나 관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공감대 형성이 잘되었고 연주하는 아이들 수준에 맞게 편곡을 한것도 바람직했다. 그 이후로는 영화보다는 늘 OST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한국에 올때 자막이 있는 영화를 보곤 했었다.

지금도 주제가를 들으면 학교강당에서 연주하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연주도 연주지만 연주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피날레로 이 곡을 연주했기 때문에 관객으로 온 학부모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을 들을수 있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면서 연주를 할수 있다는 것이 가장 멋있는 점이었다. 연주를 하는 아이들의 미소를 볼때마다 큰 아이에게 처음 첼로를 시킬때가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5학년무렵 학교에서 오케스트라부를 신설한다고 하기에 덜커덕 아이에게 첼로를 주고 입단을 시켰다. 먼저 일주일에 3번 방과후에 악기별로 모여서 연습을 시킨다고 했다. 연습을 어떻게 시키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억지로 데려다 놓은것이니 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연습날만 되면 집으로 오지 않아서 시간맞춰 데리고 가느라 학교와 아파트를 뒤져서 아이를 찾아다니곤 했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부는 전체적으로 모여서 맞춰볼 기회도 없이 학교와 강사간의 문제로 인해 3,4달만에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

다음해에 미국에 갔더니 역시 오케스트라반이 있어서 이번에도 무조건 집어넣었다. 여름방학 특강부터 집어넣었는데 흥미롭게도 3주 연습을 하고 마지막에 공연을 한다고 한다. 도대체 3주연습을 해서 공연할 레퍼토리가 있을까가 궁금했는데 결국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약 30분 정도 짧았지만 그래도 공연은 공연이었고 더구나 피날레는 007영화 주제가였는데 그 곡을 위해서 아이들이 선글래스를 끼는 퍼포먼스까지 했다. 당연히 학부모가 전부인 관객은 기립박수로 화답을 했고 아이들은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것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우리 아이는 그때부터 첼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가르치는 방식과 학부모의 자세였다.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학교에서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모두 같이 놓고 한 선생님이 지도를 했다. 거기에 고등학생이 파트별로 한두명씩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서 아이들과 같이 연주를 했다. 파트별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모이니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연습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마지막에 공연을 마련한 것은 그동안의 노력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다고 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특별활동수업은 늘 이런식으로 단기간 연습을 하더라도 마무리는 꼭 부모들을 불러다가 보여주는 시간을 가진다. 심지어는 처음 연주하는 플륫을 3주 연습해서 달랑 도레미파솔라시도만 부는것도 공연이라고 이름을 붙이니 애초에 기대를 크게 안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부담없이 모여서 칭찬해주고 박수쳐주니 아이들도 즐기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질적인 면을 떠나서 아이들에게 즐거운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는 활동을 시키는 방식이 맘에 든다.








Friday, October 18, 2019

You raise me up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곡은 아일랜드계 노르웨이 듀오인 시크릿가든이 만든 곡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영국에서만 약간 알려졌는데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이곡을 부르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유명하게 알려진데에는 미국의 조쉬 그로번이라는 가수가 큰 역할을 했는데 그가 부른 이 곡이 미국에서 크게 히트를 했고 이후에는 유명한 그룹 웨스트라이프가  부르면서 영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곡을 접하게 된 것은 재미있게도 아이들 초등학교의 음악발표회에서였다. 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매년 학년별로 음악발표를 하는데 전교생이 하는 것이니 질적인 면을 따지는 것보다는 학생, 교사, 부모 할것없이 그냥 한데 모여 즐기는 하나의 행사라는 의미가 크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최소한의 준비로 모두가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소품이라고 해도 선그라스라든지 흰색티라든지 집에 있는 것을 입고 오는 것으로 굳이 이 것을 위해 무언가를 사갈 필요는 없다. 단지 학생들은 음방과후에 한시간 정도씩 연습을 더하고 행사 당일 밤 간단하게 즐길수 있는 스낵과 음료수만 준비를 해 둔다. 관객은 마을에 사는 주민은 누구나 올수 있는데 대부분이 학부모나 조부모 친척등이 보러온다. 시작은 1학년부터이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6학년인데 6학년은 곧 졸업을 하게되니 약간은 더 곡 선정에 신경을 쓰는 듯 하다.

우리 작은 아이가 6학년이었을때 이 곡을 마직막 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아이들이야 음악선생님이 정한 곡을 시키는대로 불렀겠지만 알다시피 가사가 감동적인 곡인데 학부모앞에서 부르니 그 자리에서 듣고 있던 부모들은 전부 눈물범벅 콧물범벅을 하며 듣다가 노래가 끝나는 순간 기립박수에 앙콜을 외치는 등 여느 유명한 아이돌그룹 콘서트 못지않은 열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 역시 들으면서 가슴 한편이 찌릿하고 눈물이 났는데 내 경우는 아이들의 노래도 노래지만 남편생"에 더 가슴이 짠했다. 우리는 기러기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더하고 싶다고 우겨서 계획보다 더 긴 시간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아버지 자리의 부재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느 가족이 그러하듯 우리 남편도 약간 일중독에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에 일 때문에 늦게 끝나는데 그 와중에 꼬박꼬박 음주까지 하나 귀가 시간은 늘 12시나 세벽3시였다. 오죽하면 어쩌다 아침에 아이들이 아빠를 마주치면 인사가 "아빠 다녀오세요" 가 아닌 "아빠 또 와" 였을까. 이렇게 같이 있어도 진정한 의미로 함께 하는 시간이 적으니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물리적인 거리가 멀뿐이지 같이 있는 시간은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떨어져 있는동안 남들보다는 자주 올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면서 아이들을 키우는게 쉬운일이 아니니 남편만 혼자서 고군분투하는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거기에 반응하는 부모들을 보니 내 결정이 남편에게는 참 어려운 선택이었겠다라고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좋은 것만 생기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아이가 성공하는 것이 부모에게도 큰 기쁨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이들과 투닥거리고 또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을 쏟으며 감동을 받는 일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일텐데 남편은 나 때문에 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빛나는 이 순간을 같이 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정말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던 때였다. 그 후로 이 곡을 들을때면 난 늘 노래를 부르던 작은아이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남편이 생각나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여기서 반전아닌 반전이 있는데 내가 노래를 듣고 감동을 느낀 것은 제목을 잘못 해석해서라고 할수 있다. raise up을 내가 알던 "키우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키워줘서 부모님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인데 나중에 번역한 걸 보니 그대로 "높이 들어 올리다"라는 뜻이었다. 뜻이 어떻게 번역이 되든 자식에게 옆에서 나를 봐주고 격려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을수 있는 부모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나에게 그런 부모님이 계셔서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때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생각이 나고  이 노래를 부르던 우리 아이가 생각이 나고 그 작은 음악 발표회가 생각이 난다.



Bach 무반주첼로조곡 by Pablo Casals

첼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익숙한 곡이라면 누구나 바흐의 무반주첼로조곡 1악장을 꼽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우연히 스페인의 한 고서점에서 한 소년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소년이 바로 파블로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