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익숙한 곡이라면 누구나 바흐의 무반주첼로조곡 1악장을 꼽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우연히 스페인의 한 고서점에서 한 소년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소년이 바로 파블로 카잘스이고 작품에 매료된 이 소년은 연구와 연습을 거쳐 최초로 이 작품 전곡을 연주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무척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작품의 길이와 연주 기교에 더해져 첼로 하나로 반주 없이 끝까지 연주를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내가 카잘스의 바흐를 들은 것은 정확한 시기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대학교 입학했을 무렵이었다고 기억한다. 한 살많은 외사촌 오빠 방에서 우연하게 카잘스의 CD를 봤는데 특이하게도 두개의 CD 케이스가 연결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많큼 곡이 많거나 길다는 뜻인데 수록된 건 단지 "6 Suites"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CD를 들었는데 첼로에 무지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첼로 특유의 낮은 울림이 있는 소리와 리듬이 뇌리에 박혔다. 당시만 해도 클래식이라면 관현악단의 연주나 피아노 독주가 유행이던 때라 그다지 현악기 연주를 듣지 못했던 때라 더 인상이 깊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역시 예술가는 음악을 들어도 일반인과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사촌오빠는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오빠랑 얘기하다가 음악얘기가 나오면서 첼로 연주에 대한 감상을 말했더니 갑자기 그 곡이 좋으면 가져도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한 얘기에 이렇게 호응을 해주면서 주다니 좀 미안하기도 하고 뜬금없기도 하고 그래도 그 곡이 맘에 들었으니 거부는 안하고 냉큼 받아왔다. 그 이후 CD는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다. 지금은 CD도 안들으니 이사할때마다 조금씩 모아놓았던 CD를 정리를 하는 와중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거의 30년을 넘게 CD 박스안에 모셔져 있다. 요즘처럼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곡을 들을수 있는 환경에서는 CD플레이어가 없으면 들을수도 없는, 어떻게 보면 불필요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한번씩 들을정도로 빠진 곡도 아닌데 왜 이 곡만은 늘 버릴수가 없었는지 나조차도 설명이 안된다.
평론가의 설명이나 클래식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이 그저 이 곡을 들으면 첼로의 약간 무겁고 낮은 소리에서 조용하고 편안하고 안정감이 들으면서도 때때로 경쾌한 느낌이 든다. 이것은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일뿐이다. 그래서 나한테는 혼자 있을때,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때 가장 많이 듣는 곡이다. 이 곡으로 인해 첼로까지 좋아하게 되면서 기회가 되면 직접 첼로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첼로를 가르치는 곳도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취미로 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그러니 악기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무엇보다도 돈이 많이 드는 것이 문제였다.
미국에 와서 아이들 덕분에 첼로를 옆에 두고 잘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연주하니 첼로를 자주 들을수 있어서 기뻤다. 큰 아이 역시 내가 첼로를 좋아하고 그 중에 바흐의 첼로조곡을 가장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다른 건 연습을 안하면서도 1악장은 열심히 연습을 한다.나름 엄마를 생각해서 하는 것 같아 기특하다. 매끄러운 연주는 아니지만 연주로만 듣던 그 어려운 곡을 아이가 라이브로 한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큰 아이가 군대를 가면서 가지고 가지 못한 첼로를 내가 보관하면서 오랫동안 꿈으로만 생각한 첼로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한국에 와야 하는 관계로 몇 달 하지 못했으니 시도를 했다는데에만 의의를 두기로 했다. 한국으로 올때 운반비가 비싸서 첼로를 가지고 오지 않기로 한 결정을 지금은 가장 후회한다. 누가 연주를 하던 가지고 오면 언젠가는 다시 한번 첼로연주에 도전할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 안타까움은 카잘스의 연주를 듣는 것으로 달랠수 밖에 없다.
music and memory
Wednesday, November 20, 2019
Monday, November 11, 2019
오늘 같은 밤이면 by 박정운
이제 3년만 있으면 결혼 30주년이 된다. 평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는데 이렇게 굳이 연도를 생각하면 내가 정말 한 남자랑 이렇게 오래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이렇게 많이 늙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실 결혼 30주년 40주년을 맞이한 부부를 보면 나이가 6,70대인 어르신들인데 내 자신을 거기에 대입하려니 괜히 거부하고 싶어지는게 여자의 본성일까. 그래서 시조카의 아이들이 나를 할머니라고 말하는 걸 들을때마다 과잉반응을 한다. 남이 나이드는 건 순리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나이먹는건 이렇게 온 몸을 다해서 거부를 하고 있는게 그 자체로 나이를 실감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내가 결혼하던 당시에는 제주도가 가장 이상적인 신혼여행지였는데 점점 해외로 눈을 돌리는 시기라 동남아나 괌, 사이판, 거기에 돈 많은 집안들의 경우에는 하와이나 유럽까지 가는 커플들도 있었다. 나 역사 당시 항공사에 근무한 배경으로 하와이를 가고 싶었지만 뼛속까지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반대로 괌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나마 항공사직원찬스를 사용해서 아주 싼 가격으로 비지니스를 예약할수 있었다. 도착지에서도 신혼여행이라고 둘만을 위한 가이드를 고용했다. 이 가이드가 생각보다 젊은 사람인데다가 한국가요를 좋아하는지 자동차만 타면 한국노래를 틀어대는데 당시에는 한류도 없었고 인터넷이 발달되지도 않았으니 한국노래도 약간 시간차가 생겨서 약간 유행이 지난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신혼여행중에 주구창창 들었던 노래가 바로 이 "오늘 같은 밤이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팝송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영어공부를 위해서도 팝송을 듣고 다녔기 때문에 한국가요는 상대적으로 많이 듣지 않았다. 그래서 박정운이란 가수도 몰랐고 그가 부른 이 노래는 나중에 찾아보니 1991년에 발표가 됬다고 하는데 자세히 알지도 못했다. 그러던 것이 타국으로 간 신혼여행지에서 타의에 의해 이 노래만 거의 일주일을 듣다보니 중독이 된 듯하다. 가사도 신혼여행에 맞는 것 같고 발라드라 신혼 분위기에 어울리고 목소리도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라 여행 내내 입에 달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사진정리를 하다 보니 방문한 장소나 찍은 사진을 보면 이 노래가 먼저 생각이 나게 되고 그 이후부터 이 노래를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신혼여행을 갔던 괌이 생각나게 되었다.
신혼여행을 간지 27년이 흘렀는데 그 이후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멋있는 곳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못가본 곳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다시 괌을 방문할 계획은 아직 없다. 단지 괌은 일생에 한번뿐인 신혼여행지였기에 의미가 있었던 것이지 콩깍지가 벗겨진 지금은 아마도 그 때 느낀 기분이나 감정을 가질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들을때마다 신혼여행이 생각날 것이다.
내가 결혼하던 당시에는 제주도가 가장 이상적인 신혼여행지였는데 점점 해외로 눈을 돌리는 시기라 동남아나 괌, 사이판, 거기에 돈 많은 집안들의 경우에는 하와이나 유럽까지 가는 커플들도 있었다. 나 역사 당시 항공사에 근무한 배경으로 하와이를 가고 싶었지만 뼛속까지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반대로 괌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나마 항공사직원찬스를 사용해서 아주 싼 가격으로 비지니스를 예약할수 있었다. 도착지에서도 신혼여행이라고 둘만을 위한 가이드를 고용했다. 이 가이드가 생각보다 젊은 사람인데다가 한국가요를 좋아하는지 자동차만 타면 한국노래를 틀어대는데 당시에는 한류도 없었고 인터넷이 발달되지도 않았으니 한국노래도 약간 시간차가 생겨서 약간 유행이 지난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신혼여행중에 주구창창 들었던 노래가 바로 이 "오늘 같은 밤이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팝송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영어공부를 위해서도 팝송을 듣고 다녔기 때문에 한국가요는 상대적으로 많이 듣지 않았다. 그래서 박정운이란 가수도 몰랐고 그가 부른 이 노래는 나중에 찾아보니 1991년에 발표가 됬다고 하는데 자세히 알지도 못했다. 그러던 것이 타국으로 간 신혼여행지에서 타의에 의해 이 노래만 거의 일주일을 듣다보니 중독이 된 듯하다. 가사도 신혼여행에 맞는 것 같고 발라드라 신혼 분위기에 어울리고 목소리도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라 여행 내내 입에 달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사진정리를 하다 보니 방문한 장소나 찍은 사진을 보면 이 노래가 먼저 생각이 나게 되고 그 이후부터 이 노래를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신혼여행을 갔던 괌이 생각나게 되었다.
신혼여행을 간지 27년이 흘렀는데 그 이후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멋있는 곳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못가본 곳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다시 괌을 방문할 계획은 아직 없다. 단지 괌은 일생에 한번뿐인 신혼여행지였기에 의미가 있었던 것이지 콩깍지가 벗겨진 지금은 아마도 그 때 느낀 기분이나 감정을 가질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들을때마다 신혼여행이 생각날 것이다.
Tuesday, November 5, 2019
Happy together (me and my cello), Beethoven's 5 secrets by Piano Guys
해피투게더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특히 장국영과 양조위가 출연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된 이후에는 더욱 많이 알려진 듯 한데 이 곡이 1967년에 처음 발표된 곡이라는 사실은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50년도 전에 만들어진 곡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화감이 없이 현재에도 인기가 많은 곡이라니 이 곡이야말로 명곡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원래도 이 곡을 좋아했는데 피아노가이즈의 뮤비를 보면서 색다르게 느꼈다. 큰 아이는 첼로를 하는데 어느날 재미있다며 "나와 첼로"라는 제목의 뮤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뮤비는 별다른 것 없이 해피투게더의 첼로연주인데 내용은 첼로를 마치 연인처럼 의인화해서 모든 일상을 첼로와 공유하는 것이었다. 첼로를 옆자리에 두고 영화를 본다거나 첼로와 같이 농구를 하거나 놀이공원에 가서 회전목마를 같이 타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그냥 재미있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렇게 비싼 악기를 저렇게 다루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내 편협한 생각으로는 첼로는 워낙 크고 비싼 악기라서 또한 소리도 바이올린만큼 다양한 소리를 낼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저 클래식한 음악에만 어울릴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첼로특유의 저음이면서도 울리는 소리를 좋아해서 어릴때부터 첼로를 배우고 싶었지만 한국에서는 전공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첼로를 가르치는 곳도 거의 없었고 악기 역시 고가라 일반 수준의 가정에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고정관념을 가졌을 것이다. 내 바람을 아이가 이루어주었으면 하는 욕심에 큰 아이에게 첼로를 시켰고 처음엔 싫어했던 아이는 나중에 스스로 약간의 연습도 하면서 나름 즐기는 것을 보고 뿌듯했다. 그러면서 첼로도 충분히 메인악기로서 모든 장르의 곡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굳이 무겁고 분위기 있는 클래식뿐 아니라 경쾌한 팝송에도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피아노가이즈의 해피투게더 뮤비는 첼로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깨고 더욱 더 첼로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피아노가이즈를 좋아하게 된 다른 계기가 그들의 또다른 뮤비였는데 이건 상당히 특이하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과 바하의 무반주첼로조곡, 또 한 곡은 제목을 모르는 팝송인데 상당히 귀에 익은 곡으로 이 세곡을 적절하게 믹스해서 연주한 뮤비다. 서로 다른 세 곡이 이렇게 적절하고 조화롭게 어울릴수 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세 곡 모두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라서 더욱 놀라웠다. 물론 한곡 한곡을 완벽하게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런 재미있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의 범위를 뛰어넘었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고 싶다. 결국 유튜브에서 피아노가이즈의 뮤비를 모두 찾아보았다. 예상대로 재미있는 것이 무척 많고 다양한 곡을 새로운 해석으로 들을수 있어서 좋았다.
미국에서는 특이한 악기를 접하는 것이 쉽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은 물론이고 첼로 콘트라베이스, 드럼 같은 크기가 큰 악기나 플륫 오보에등 가격이 비싼 악기들도 쉽게 배울수 있다. 배우기 위해서 굳이 처음부터 비싼 악기를 구입할 필요도 없다. 악기상에 가면 렌탈을 어느 악기라도 렌탈을 할수 있고 레슨도 받을 수 있다. 렌탈비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 첼로 같은 경우는 한달에 30달러면 웬만한 수준으로 빌릴수 있다. 렌탈기간동안 AS도 무상으로 가능하고 장기간 임대하고 나면 그 악기를 구입할수도 있다. 악보등도 다양한 악기에 맞게 편곡도 잘 되어 있고 그룹으로 연주할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져 있어 흥미가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누구나 배울수 있다. 연습한 시간이 짧아 실력이 없어도 이런 저런 발표회를 할 기회를 많이 주기때문에 잘해야 사람들 앞에 설수 있다는 긴장감이 없이 그야말로 즐기면서 배울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Saturday, November 2, 2019
We are young by Fun
그룹 Fun은 아마도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한국에 있는동안 이들의 인기곡을 그다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그룹은 아니라서 사실 그룹이었는지도 모르긴 했었다. 가수보다 노래에 더 이끌렸기 때문이다.
이 곡을 처음 들은건 아이들 오케스트라 여행에 참가한 학부모가 여행중 찍어서 올린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서 CD로 만들어서 학부모 전체에 돌렸을 때이다. 편집을 하면서 배경음악으로 이 곡을 넣었는데 다른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유독 후렴구인 we are young so let's set the world on fire we can burn brighter than the sun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도 젊기 때문에 아무생각없이 무모하게 앞으로 나갈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그것이 아이들이 여행지에서 보인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가지는 자유로움, 즐거움, 장난, 연습, 음악 등이 같이 어울렸기 때문인 것 같다. 영상속의 아이들은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문화를 즐기고 자신들의 공연에 진지하게 임하고 열심히 연습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를 느낄수 있었고 그 나이대에 누릴수 있는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는 것을 보면서 부럽기까지 했다. 내가 그 나이때는 주변환경에 치여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이 나이에는 이렇게 재미있게 살수도 있구나 하는 부러움이었다. 어리기 때문에 용감하고 무모한 아이들과 이 곡의 후렴이 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이 곡을 들을때마다 여행지에서의 아이들이 생각이 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곡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파티에서 술 마시고 취한 다음날 자신의 경험을 쓴 것이라고 하니 좀 허무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여행은 큰 아이가 고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가 2학년일때 이루어졌다. 아이들이 다닌 고등학교는 평범한 공립고등학교인데 흔히 말하는 서버번지역, 즉 도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에 있었는데 주민들이 대부분 백인중상층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면서 생각이 진보적이고 교육열이 높은 마을이다. 미국도 학교별 지역별로 교육차가 심해서 도심에 있는 학교들은 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많은 반면 이렇게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학교들이 많다. 내가 살던 곳의 학교는 특히 오케스트라가 유명해서 그저 학교오케스트라인데도 실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어 이 학교 학생들이 매년 열리는 음악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담당교사가 이런 기획을 했을 것이다. 봄방학을 포함해서 약 2주간 단원인 학생 약 80명과 보호자 30명정도로 구성되어 이태리 로마와 플로렌스의 교회에서 공연을 하는 대규모 투어콘서트(?)였던 것이다. 사전에 현지와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오케스트라 담당교사가 상당히 열성적이어서 아주 다양하고 훌륭한 기획을 해서 늘 감탄을 했었다.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공연여행을 기획하는 교사도 대단하고 그것을 허락한 학교도 대단하고 뒤에서 서포트한 학부모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1인당 약 3000달러가 드는 비싼 여행이라 우리 집처럼 풍족하지 않은 가족에게는 사실 버거운 여행이었다. 이 부분을 학교에서는 1년전부터 꾸준히 펀드활동을 해서 충당했다. 아이들이 주말에 세차를 하는 등 자체적으로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또한 여유가 있는 가족들에게서 기부금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준비끝에 여행을 가서 늘 익숙한 관객앞에서가 아니라 말도 안통하는 전혀 낯선 관객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하니 아이들도 긴장을 하고 더 연습에 열중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그만큼 성취감 또한 늘었을 것이고 이것이 음악에 대한 관심과 취미를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학교 오케스트라 공연은 학기중에 한번 학기말에 한번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가끔씩 챔버오케스트라가 크리스마스나 시(市)차원에서 행사를 할때 공연을 하기도 한다. 연습은 일반적으로 방과후에 한시간반 정도이다. 개인적으로는 개인교습을 받거나 청소년시립교향악단이나 시에서 운영하는 음악원의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곳은 어떤 취미 활동을 하든 그 문턱이 높지 않은 것 같다. 악기를 배우고 싶으면 악기상에 가서 비교적 싼값에 악기를 빌릴수 있다. 렌탈한 기간이 길어지면 그 악기를 소유할수 있다. 혼자서 연습을 하기도 하지만 잘하든 못하든 처음부터 모두 모여 음악을 맞춰보면서 연습을 한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청소년시립교향악단이나 시 음악원 같은 경우에는 오디션을 보기도 하지만 경쟁률이 치열하지는 않다. 미국 공립학교는 공부를 시키는 것에는 실패를 한 것 같지만 방과후 활동은 성공적으로 시키는 것 같다.
이 곡을 처음 들은건 아이들 오케스트라 여행에 참가한 학부모가 여행중 찍어서 올린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서 CD로 만들어서 학부모 전체에 돌렸을 때이다. 편집을 하면서 배경음악으로 이 곡을 넣었는데 다른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유독 후렴구인 we are young so let's set the world on fire we can burn brighter than the sun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도 젊기 때문에 아무생각없이 무모하게 앞으로 나갈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그것이 아이들이 여행지에서 보인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가지는 자유로움, 즐거움, 장난, 연습, 음악 등이 같이 어울렸기 때문인 것 같다. 영상속의 아이들은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문화를 즐기고 자신들의 공연에 진지하게 임하고 열심히 연습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를 느낄수 있었고 그 나이대에 누릴수 있는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는 것을 보면서 부럽기까지 했다. 내가 그 나이때는 주변환경에 치여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이 나이에는 이렇게 재미있게 살수도 있구나 하는 부러움이었다. 어리기 때문에 용감하고 무모한 아이들과 이 곡의 후렴이 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이 곡을 들을때마다 여행지에서의 아이들이 생각이 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곡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파티에서 술 마시고 취한 다음날 자신의 경험을 쓴 것이라고 하니 좀 허무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여행은 큰 아이가 고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가 2학년일때 이루어졌다. 아이들이 다닌 고등학교는 평범한 공립고등학교인데 흔히 말하는 서버번지역, 즉 도심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에 있었는데 주민들이 대부분 백인중상층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면서 생각이 진보적이고 교육열이 높은 마을이다. 미국도 학교별 지역별로 교육차가 심해서 도심에 있는 학교들은 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많은 반면 이렇게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학교들이 많다. 내가 살던 곳의 학교는 특히 오케스트라가 유명해서 그저 학교오케스트라인데도 실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어 이 학교 학생들이 매년 열리는 음악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담당교사가 이런 기획을 했을 것이다. 봄방학을 포함해서 약 2주간 단원인 학생 약 80명과 보호자 30명정도로 구성되어 이태리 로마와 플로렌스의 교회에서 공연을 하는 대규모 투어콘서트(?)였던 것이다. 사전에 현지와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오케스트라 담당교사가 상당히 열성적이어서 아주 다양하고 훌륭한 기획을 해서 늘 감탄을 했었다.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공연여행을 기획하는 교사도 대단하고 그것을 허락한 학교도 대단하고 뒤에서 서포트한 학부모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1인당 약 3000달러가 드는 비싼 여행이라 우리 집처럼 풍족하지 않은 가족에게는 사실 버거운 여행이었다. 이 부분을 학교에서는 1년전부터 꾸준히 펀드활동을 해서 충당했다. 아이들이 주말에 세차를 하는 등 자체적으로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또한 여유가 있는 가족들에게서 기부금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준비끝에 여행을 가서 늘 익숙한 관객앞에서가 아니라 말도 안통하는 전혀 낯선 관객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하니 아이들도 긴장을 하고 더 연습에 열중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그만큼 성취감 또한 늘었을 것이고 이것이 음악에 대한 관심과 취미를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학교 오케스트라 공연은 학기중에 한번 학기말에 한번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가끔씩 챔버오케스트라가 크리스마스나 시(市)차원에서 행사를 할때 공연을 하기도 한다. 연습은 일반적으로 방과후에 한시간반 정도이다. 개인적으로는 개인교습을 받거나 청소년시립교향악단이나 시에서 운영하는 음악원의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곳은 어떤 취미 활동을 하든 그 문턱이 높지 않은 것 같다. 악기를 배우고 싶으면 악기상에 가서 비교적 싼값에 악기를 빌릴수 있다. 렌탈한 기간이 길어지면 그 악기를 소유할수 있다. 혼자서 연습을 하기도 하지만 잘하든 못하든 처음부터 모두 모여 음악을 맞춰보면서 연습을 한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청소년시립교향악단이나 시 음악원 같은 경우에는 오디션을 보기도 하지만 경쟁률이 치열하지는 않다. 미국 공립학교는 공부를 시키는 것에는 실패를 한 것 같지만 방과후 활동은 성공적으로 시키는 것 같다.
Monday, October 28, 2019
Hallelujah by Leonard Cohen
할렐루야는 캐나다출신 가수 레너드 코헨이 1984년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나중에 제프 버클리라는 가수가 리메이크한 후에 크게 히트를 치게되었는데 2001년 슈렉에 수록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곡을 처음 들은것은 1996년 여름이었다. 남편이 미국에 단기교육으로 가게되었을때 따라갔는데 교육을 받으면서도 출장및 학회등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는 해야했다. 당시 학회를 연 장소는 플로리다의 힐튼빌리지였는데 워낙 비싼 곳이라 머물지는 못했고 저녁초대만 받아 참석을 할수 있었다. 미국의 학회는 한국과 달리 학회 참석자가 동반자를 데리고 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족들을 많이 데리고 오기 때문에 주최측에서는 학회일정외에 동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거나 학회기간 중 한번은 참석자 및 가족을 동반한 저녁만찬을 한다. 내가 참석을 한 것은 호텔에서 주최한 저녁만찬이었다. 참석을 하긴 했으나 아는 사람도 없고 사교성도 없어 나혼자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수 없었던 것은 호텔의 규모와 분위기였다. 플로리다 남부해안에 말 그대로 빌리지를 만들듯이 호텔과 리조트를 구성해 놓았는데 아마도 요즘 말하는 프라이빗 풀빌라 개념이 아닐 듯 싶었다. 그 넓은 곳에 조용하면서도 아늑하게 비치앞에 마련해 놓은 장소는 해가 질때의 아련한 분위기와 굉장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분주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여유있는 남국의 정서를 즐길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동시에 왜 동남아의 그 많은 아름다운 해변에 미국인들은 없고 유럽인들만 있을까 하는 평소의 궁금증이 풀렸다. 미국안에서 동남아를 느낄수 있는 곳이 있는데 굳이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갈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온 청교도에게 터전을 빼앗긴 인디언들이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묘했다. 이 때 나온 음악이 바로 이 할렐루야였다. 처음 들은 것이기에 제목도 몰랐고 누가 불렀는지도 모르지만 음률만은 당시 내가 느꼈던 복잡한 기분과 묘하게 어우러져서 내 머리속에 깊히 새겨지게 되었다. 단지 가사에 할렐루야가 들어가니 종교음악인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후 슈렉에서 두번째로 듣게 되었을때는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야 이 곡이 많은 가수들에 의해 편곡되어지고 다양한 버전이 있으며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캐롤처럼 불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 곡을 들을때면 언제나 처음 들었던 곳의 해변과 노을과 거기서 느꼈던 조용하면서 적적하고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차단이 되면서 여유가 있지만 웬지 슬픈 느낌이 들었던 그 기분이 생각이 난다.
내가 이 곡을 처음 들은것은 1996년 여름이었다. 남편이 미국에 단기교육으로 가게되었을때 따라갔는데 교육을 받으면서도 출장및 학회등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는 해야했다. 당시 학회를 연 장소는 플로리다의 힐튼빌리지였는데 워낙 비싼 곳이라 머물지는 못했고 저녁초대만 받아 참석을 할수 있었다. 미국의 학회는 한국과 달리 학회 참석자가 동반자를 데리고 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족들을 많이 데리고 오기 때문에 주최측에서는 학회일정외에 동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거나 학회기간 중 한번은 참석자 및 가족을 동반한 저녁만찬을 한다. 내가 참석을 한 것은 호텔에서 주최한 저녁만찬이었다. 참석을 하긴 했으나 아는 사람도 없고 사교성도 없어 나혼자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수 없었던 것은 호텔의 규모와 분위기였다. 플로리다 남부해안에 말 그대로 빌리지를 만들듯이 호텔과 리조트를 구성해 놓았는데 아마도 요즘 말하는 프라이빗 풀빌라 개념이 아닐 듯 싶었다. 그 넓은 곳에 조용하면서도 아늑하게 비치앞에 마련해 놓은 장소는 해가 질때의 아련한 분위기와 굉장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분주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여유있는 남국의 정서를 즐길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동시에 왜 동남아의 그 많은 아름다운 해변에 미국인들은 없고 유럽인들만 있을까 하는 평소의 궁금증이 풀렸다. 미국안에서 동남아를 느낄수 있는 곳이 있는데 굳이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갈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온 청교도에게 터전을 빼앗긴 인디언들이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묘했다. 이 때 나온 음악이 바로 이 할렐루야였다. 처음 들은 것이기에 제목도 몰랐고 누가 불렀는지도 모르지만 음률만은 당시 내가 느꼈던 복잡한 기분과 묘하게 어우러져서 내 머리속에 깊히 새겨지게 되었다. 단지 가사에 할렐루야가 들어가니 종교음악인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후 슈렉에서 두번째로 듣게 되었을때는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야 이 곡이 많은 가수들에 의해 편곡되어지고 다양한 버전이 있으며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캐롤처럼 불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 곡을 들을때면 언제나 처음 들었던 곳의 해변과 노을과 거기서 느꼈던 조용하면서 적적하고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차단이 되면서 여유가 있지만 웬지 슬픈 느낌이 들었던 그 기분이 생각이 난다.
Tuesday, October 22, 2019
캐리비안의 해적 OST
개인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영화자체가 아니라 내 영어실력 때문이었다. 첫번째 영화인 플랙펄의 저주가 나온것이 2003년이었는데 당시는 그 영화에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고 2005년 미국으로 가면서 두번째 영화인 망자의 함을 현지에서 본 것이다. 현대영어가 아닌것도 어려웠는데 배우들의 발음도 알아듣기 어려웠는데다가 자막도 없으니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알았지만 대사가 주는 깨알같은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다. 한마디로 영어실력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OST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아이들 학교 오케스트라가 이영화의 주제가를 연주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연주를 한 것이다. 인기가 많았던 영화이니 연주를 하는 학생들이나 관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공감대 형성이 잘되었고 연주하는 아이들 수준에 맞게 편곡을 한것도 바람직했다. 그 이후로는 영화보다는 늘 OST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한국에 올때 자막이 있는 영화를 보곤 했었다.
지금도 주제가를 들으면 학교강당에서 연주하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연주도 연주지만 연주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피날레로 이 곡을 연주했기 때문에 관객으로 온 학부모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을 들을수 있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면서 연주를 할수 있다는 것이 가장 멋있는 점이었다. 연주를 하는 아이들의 미소를 볼때마다 큰 아이에게 처음 첼로를 시킬때가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5학년무렵 학교에서 오케스트라부를 신설한다고 하기에 덜커덕 아이에게 첼로를 주고 입단을 시켰다. 먼저 일주일에 3번 방과후에 악기별로 모여서 연습을 시킨다고 했다. 연습을 어떻게 시키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억지로 데려다 놓은것이니 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연습날만 되면 집으로 오지 않아서 시간맞춰 데리고 가느라 학교와 아파트를 뒤져서 아이를 찾아다니곤 했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부는 전체적으로 모여서 맞춰볼 기회도 없이 학교와 강사간의 문제로 인해 3,4달만에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
다음해에 미국에 갔더니 역시 오케스트라반이 있어서 이번에도 무조건 집어넣었다. 여름방학 특강부터 집어넣었는데 흥미롭게도 3주 연습을 하고 마지막에 공연을 한다고 한다. 도대체 3주연습을 해서 공연할 레퍼토리가 있을까가 궁금했는데 결국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약 30분 정도 짧았지만 그래도 공연은 공연이었고 더구나 피날레는 007영화 주제가였는데 그 곡을 위해서 아이들이 선글래스를 끼는 퍼포먼스까지 했다. 당연히 학부모가 전부인 관객은 기립박수로 화답을 했고 아이들은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것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우리 아이는 그때부터 첼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가르치는 방식과 학부모의 자세였다.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학교에서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모두 같이 놓고 한 선생님이 지도를 했다. 거기에 고등학생이 파트별로 한두명씩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서 아이들과 같이 연주를 했다. 파트별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모이니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연습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마지막에 공연을 마련한 것은 그동안의 노력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다고 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특별활동수업은 늘 이런식으로 단기간 연습을 하더라도 마무리는 꼭 부모들을 불러다가 보여주는 시간을 가진다. 심지어는 처음 연주하는 플륫을 3주 연습해서 달랑 도레미파솔라시도만 부는것도 공연이라고 이름을 붙이니 애초에 기대를 크게 안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부담없이 모여서 칭찬해주고 박수쳐주니 아이들도 즐기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질적인 면을 떠나서 아이들에게 즐거운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는 활동을 시키는 방식이 맘에 든다.
지금도 주제가를 들으면 학교강당에서 연주하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연주도 연주지만 연주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피날레로 이 곡을 연주했기 때문에 관객으로 온 학부모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을 들을수 있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면서 연주를 할수 있다는 것이 가장 멋있는 점이었다. 연주를 하는 아이들의 미소를 볼때마다 큰 아이에게 처음 첼로를 시킬때가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5학년무렵 학교에서 오케스트라부를 신설한다고 하기에 덜커덕 아이에게 첼로를 주고 입단을 시켰다. 먼저 일주일에 3번 방과후에 악기별로 모여서 연습을 시킨다고 했다. 연습을 어떻게 시키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억지로 데려다 놓은것이니 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연습날만 되면 집으로 오지 않아서 시간맞춰 데리고 가느라 학교와 아파트를 뒤져서 아이를 찾아다니곤 했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부는 전체적으로 모여서 맞춰볼 기회도 없이 학교와 강사간의 문제로 인해 3,4달만에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
다음해에 미국에 갔더니 역시 오케스트라반이 있어서 이번에도 무조건 집어넣었다. 여름방학 특강부터 집어넣었는데 흥미롭게도 3주 연습을 하고 마지막에 공연을 한다고 한다. 도대체 3주연습을 해서 공연할 레퍼토리가 있을까가 궁금했는데 결국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약 30분 정도 짧았지만 그래도 공연은 공연이었고 더구나 피날레는 007영화 주제가였는데 그 곡을 위해서 아이들이 선글래스를 끼는 퍼포먼스까지 했다. 당연히 학부모가 전부인 관객은 기립박수로 화답을 했고 아이들은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것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우리 아이는 그때부터 첼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가르치는 방식과 학부모의 자세였다.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학교에서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모두 같이 놓고 한 선생님이 지도를 했다. 거기에 고등학생이 파트별로 한두명씩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서 아이들과 같이 연주를 했다. 파트별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모이니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연습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마지막에 공연을 마련한 것은 그동안의 노력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다고 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특별활동수업은 늘 이런식으로 단기간 연습을 하더라도 마무리는 꼭 부모들을 불러다가 보여주는 시간을 가진다. 심지어는 처음 연주하는 플륫을 3주 연습해서 달랑 도레미파솔라시도만 부는것도 공연이라고 이름을 붙이니 애초에 기대를 크게 안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부담없이 모여서 칭찬해주고 박수쳐주니 아이들도 즐기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질적인 면을 떠나서 아이들에게 즐거운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는 활동을 시키는 방식이 맘에 든다.
Friday, October 18, 2019
You raise me up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곡은 아일랜드계 노르웨이 듀오인 시크릿가든이 만든 곡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영국에서만 약간 알려졌는데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이곡을 부르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유명하게 알려진데에는 미국의 조쉬 그로번이라는 가수가 큰 역할을 했는데 그가 부른 이 곡이 미국에서 크게 히트를 했고 이후에는 유명한 그룹 웨스트라이프가 부르면서 영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곡을 접하게 된 것은 재미있게도 아이들 초등학교의 음악발표회에서였다. 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매년 학년별로 음악발표를 하는데 전교생이 하는 것이니 질적인 면을 따지는 것보다는 학생, 교사, 부모 할것없이 그냥 한데 모여 즐기는 하나의 행사라는 의미가 크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최소한의 준비로 모두가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소품이라고 해도 선그라스라든지 흰색티라든지 집에 있는 것을 입고 오는 것으로 굳이 이 것을 위해 무언가를 사갈 필요는 없다. 단지 학생들은 음방과후에 한시간 정도씩 연습을 더하고 행사 당일 밤 간단하게 즐길수 있는 스낵과 음료수만 준비를 해 둔다. 관객은 마을에 사는 주민은 누구나 올수 있는데 대부분이 학부모나 조부모 친척등이 보러온다. 시작은 1학년부터이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6학년인데 6학년은 곧 졸업을 하게되니 약간은 더 곡 선정에 신경을 쓰는 듯 하다.
우리 작은 아이가 6학년이었을때 이 곡을 마직막 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아이들이야 음악선생님이 정한 곡을 시키는대로 불렀겠지만 알다시피 가사가 감동적인 곡인데 학부모앞에서 부르니 그 자리에서 듣고 있던 부모들은 전부 눈물범벅 콧물범벅을 하며 듣다가 노래가 끝나는 순간 기립박수에 앙콜을 외치는 등 여느 유명한 아이돌그룹 콘서트 못지않은 열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 역시 들으면서 가슴 한편이 찌릿하고 눈물이 났는데 내 경우는 아이들의 노래도 노래지만 남편생"에 더 가슴이 짠했다. 우리는 기러기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더하고 싶다고 우겨서 계획보다 더 긴 시간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아버지 자리의 부재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느 가족이 그러하듯 우리 남편도 약간 일중독에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에 일 때문에 늦게 끝나는데 그 와중에 꼬박꼬박 음주까지 하나 귀가 시간은 늘 12시나 세벽3시였다. 오죽하면 어쩌다 아침에 아이들이 아빠를 마주치면 인사가 "아빠 다녀오세요" 가 아닌 "아빠 또 와" 였을까. 이렇게 같이 있어도 진정한 의미로 함께 하는 시간이 적으니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물리적인 거리가 멀뿐이지 같이 있는 시간은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떨어져 있는동안 남들보다는 자주 올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면서 아이들을 키우는게 쉬운일이 아니니 남편만 혼자서 고군분투하는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거기에 반응하는 부모들을 보니 내 결정이 남편에게는 참 어려운 선택이었겠다라고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좋은 것만 생기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아이가 성공하는 것이 부모에게도 큰 기쁨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이들과 투닥거리고 또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을 쏟으며 감동을 받는 일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일텐데 남편은 나 때문에 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빛나는 이 순간을 같이 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정말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던 때였다. 그 후로 이 곡을 들을때면 난 늘 노래를 부르던 작은아이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남편이 생각나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여기서 반전아닌 반전이 있는데 내가 노래를 듣고 감동을 느낀 것은 제목을 잘못 해석해서라고 할수 있다. raise up을 내가 알던 "키우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키워줘서 부모님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인데 나중에 번역한 걸 보니 그대로 "높이 들어 올리다"라는 뜻이었다. 뜻이 어떻게 번역이 되든 자식에게 옆에서 나를 봐주고 격려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을수 있는 부모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나에게 그런 부모님이 계셔서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때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생각이 나고 이 노래를 부르던 우리 아이가 생각이 나고 그 작은 음악 발표회가 생각이 난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곡을 접하게 된 것은 재미있게도 아이들 초등학교의 음악발표회에서였다. 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매년 학년별로 음악발표를 하는데 전교생이 하는 것이니 질적인 면을 따지는 것보다는 학생, 교사, 부모 할것없이 그냥 한데 모여 즐기는 하나의 행사라는 의미가 크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최소한의 준비로 모두가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소품이라고 해도 선그라스라든지 흰색티라든지 집에 있는 것을 입고 오는 것으로 굳이 이 것을 위해 무언가를 사갈 필요는 없다. 단지 학생들은 음방과후에 한시간 정도씩 연습을 더하고 행사 당일 밤 간단하게 즐길수 있는 스낵과 음료수만 준비를 해 둔다. 관객은 마을에 사는 주민은 누구나 올수 있는데 대부분이 학부모나 조부모 친척등이 보러온다. 시작은 1학년부터이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6학년인데 6학년은 곧 졸업을 하게되니 약간은 더 곡 선정에 신경을 쓰는 듯 하다.
우리 작은 아이가 6학년이었을때 이 곡을 마직막 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아이들이야 음악선생님이 정한 곡을 시키는대로 불렀겠지만 알다시피 가사가 감동적인 곡인데 학부모앞에서 부르니 그 자리에서 듣고 있던 부모들은 전부 눈물범벅 콧물범벅을 하며 듣다가 노래가 끝나는 순간 기립박수에 앙콜을 외치는 등 여느 유명한 아이돌그룹 콘서트 못지않은 열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 역시 들으면서 가슴 한편이 찌릿하고 눈물이 났는데 내 경우는 아이들의 노래도 노래지만 남편생"에 더 가슴이 짠했다. 우리는 기러기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더하고 싶다고 우겨서 계획보다 더 긴 시간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아버지 자리의 부재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느 가족이 그러하듯 우리 남편도 약간 일중독에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에 일 때문에 늦게 끝나는데 그 와중에 꼬박꼬박 음주까지 하나 귀가 시간은 늘 12시나 세벽3시였다. 오죽하면 어쩌다 아침에 아이들이 아빠를 마주치면 인사가 "아빠 다녀오세요" 가 아닌 "아빠 또 와" 였을까. 이렇게 같이 있어도 진정한 의미로 함께 하는 시간이 적으니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물리적인 거리가 멀뿐이지 같이 있는 시간은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떨어져 있는동안 남들보다는 자주 올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면서 아이들을 키우는게 쉬운일이 아니니 남편만 혼자서 고군분투하는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거기에 반응하는 부모들을 보니 내 결정이 남편에게는 참 어려운 선택이었겠다라고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좋은 것만 생기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아이가 성공하는 것이 부모에게도 큰 기쁨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이들과 투닥거리고 또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을 쏟으며 감동을 받는 일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일텐데 남편은 나 때문에 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빛나는 이 순간을 같이 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정말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던 때였다. 그 후로 이 곡을 들을때면 난 늘 노래를 부르던 작은아이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남편이 생각나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여기서 반전아닌 반전이 있는데 내가 노래를 듣고 감동을 느낀 것은 제목을 잘못 해석해서라고 할수 있다. raise up을 내가 알던 "키우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키워줘서 부모님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인데 나중에 번역한 걸 보니 그대로 "높이 들어 올리다"라는 뜻이었다. 뜻이 어떻게 번역이 되든 자식에게 옆에서 나를 봐주고 격려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을수 있는 부모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나에게 그런 부모님이 계셔서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때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생각이 나고 이 노래를 부르던 우리 아이가 생각이 나고 그 작은 음악 발표회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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